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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by jimmy_dev 2023. 7. 30.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6가지 방법 -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저 직원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어 봐야겠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일이지만 생각 외로 쉽지 않다고 느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호감을 갖게 될 때, 어떤 계기가 생겼는지 혹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를 되돌아 보면 근본적인 답이 해결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누군가 나를 좋아하거나 호감을 갖고 접근한 경우에 그들에게 꼭 이유를 물어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들의 공통점은 ‘자기 기준의 일정 수준 이상 만족감을 준 요소들’이었다. 결론은 나왔다. ‘상대방이 심리적 만족감을 제대로 느끼게 만드는 나의 행동, 가치’가 그들에게 작용했다는 말이다. 그 만족감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행동과 가치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책을 읽어봤
다.
 
 

만약 우리가 너무나 비열하게 이기적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약간의 행복과 약간의 진심 어린 인정을 전하는 것도 뭔가 대가로 받지 않으면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즉 우리 영혼이 시고 떫은 돌능금 크기만도 못하다면, 응당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

돈이 많고 능력이 좋아도 ‘마음의 가난’은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 자신의 가치와 타인에게 대하는 태도로 드러나기 때문에 숨길 수도 없으며 감춰도 언젠가 보여지기 때문이다. 위 말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마음을 숨기기, 그런 행동을 합리화 하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맞다고 치부하기, 나의 것을 주면 손해본다고 생각하기 그리고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하기. 내가 살면서 봐온 사람들과 나의 경험, 스스로 내면에서 겪어온 것들을 토대로 생각해본 마음의 가난 사람들의 특정 행동들이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여 스스로를 방어하고 남에게 자신의 단점이나 못난점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어찌 됐던 스스로 자신을 갉아먹는 짓이다. 이런 사람에게 그 누구도 좋아할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호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상대가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라. … (중략) ….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본성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진가를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이다”라고 말했다.

‘인정 받는 느낌’은 인간이 내적으로, 심리적으로 제일 질적인 만족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인정한다는 말은 ‘당신의 행동과 생각에 동의하고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의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맞는 말과 행동을 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존중한다는 말은 당신의 것을 그 자체로 봐주겠다는 의미이다.
 
결과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만족감’의 의미도 바로 ‘인정’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로 부터 받는 진심 어린 인정은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게 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내가 쉽게 이렇게 느끼는 만큼 타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식은 다를 수 있어도 본질적인 요소는 같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크고 작은 인정들을 먹고 채워주면서 산다. 그리고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렇게 서로가 죽을때까지 주고 받으면서 살아야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성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다짐이 생겼다. 가장 내면에 존재하는 갈망인 만큼 더욱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진정한 인정받는 느낌을 갖도록 할 수 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받고 싶으면 먼저 주어라’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보장되거나 검증된 것이 아니면 불안해하고 의심을 가진다. 즉 믿음을 쉽게 주지 못하고 자기 것을 내어주는 행위에 대해 심하게 고민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심리를 반대로 이용하여, 관계의 시발점을 만들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
 
자기확신이 강하면서 마음의 양식이 풍족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먼저 내어주는 데에 손해본다고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먼저 해준다고 상실감이나 굴욕감과 같은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하지 않는다.
 
인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먼저 해주길 기다리거나 바란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이득이라고 생각되는 요소가 생기면 그제서야 상대방에게 줄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다. 하지만 충분히 자신의 결정적이고 소중한, 지켜야 하는 것을 잃지 않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접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아니, 그냥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해주어도 사실상 잃을 것이 없다. 만약 잃었다고 생각했다면 보상심리에서 나오는 감정이나 상심에 가까울 것이다.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보상받을 것도 없다. 내가 원하는 대접은 상대방도 원한다. 내가 먼저 해준다고 잃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당장 나의 심리와 감정만을 생각하는 게 아닌 상대방과의 큰 그림을 생각한다면 먼저 대접해주어라. 그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달하라.
 
 

찰스 슈왑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회생활이나 심지어 일상속에서도 입발린말, 즉 ‘가식적인 칭찬’을 흔히들 주고 받는다. 물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를 치켜세워주고 드높여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그렇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이유도 있다. 칭찬받는 입장에선 분석하거나 깊게 고민하여 의심할 필요가 없다. 말해주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결국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칭찬을 해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할 때, 혹은 그런 경험을 떠올리면서 진심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해주었나 라고 자문해보자. 누군가에게 진심이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으면 가슴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의미없고 가식적인 칭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더불어 진심이 담긴 칭찬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애를 쓰지 않아도 타인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칭찬을 할 수 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요’.,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괜찮으신가요?’, ‘감사합니다.’ 등 이런 간단한 표현들은 단조로운 일상생활의 윤활유와 같은 인사말인 동시에 올바른 예의범절을 증명해주는 각인효과도 있다.

요즘 현대사회 젊은이들에게 결여된 의식 중 하나가 ‘상대방을 생각하여 진심으로 대하기’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저렇게 관심을 갖는 일 또한 그렇다. 사실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타인에 대한 존중, 관심, 배려가 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나타나야 진정으로 예의를 표할 수 있다.
 
과연 저러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 것이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의외로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을 남사스러워 하고 은근 부끄러워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익숙하지 않음’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점’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우리는 서로 사람끼리 마주하고 부딫히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서로가 내뱉는 말 하나 하나에 화자의 감정과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그리고 상대방은 생각보다 나의 의도와 감정선을 느낌적으로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겉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해도 눈빛, 행동, 말투, 어투에 조금씩 다 뭍어나있다. 그리고 상대방은 두 눈으로 그것들을 보게 되며 하다 못해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알게 된다.
 
물론 상황과 지위, 위치에 따른 예의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마 일상 속에서 당연시 하며 녹아든 부분이 다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인용구와 같은 말들을 할 때 정말 본질적인 의미로써 들어가게 되면 외부 상황적인 요소들을 떠나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알게 된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윤활유 같은 말들로 서로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고 나의 젠틀함과 예의바름을 인식시켜줄 수 있다.
 
서늘하고 딱딱한, 사무적인 분위기로 이어지는 대화나 비지니스적으로만 생각하는 태도 보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 감정 그리고 서로간의 태도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서 먼저 깨닫고 부가적인 부분들을 채워 나아가도 늦지 않다.
 
 

그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준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면, 그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 내면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인정’이다. 즉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데다가 그걸 외부로 부터 받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지만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도무지 잘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모먼트가 생겨서 삶이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거나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순간들을 얻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이러한 순간들을 선사해줄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가? 아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가?
 
진심으로 인정해준다는 의미는 생각보다 심플하지만 결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의미만 내포하고 있진 않다. 그 사람이 한 행동과 말에 담긴 가치관과 생각에 동의하거나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는 뜻이 담겨있다. 동시에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고 내 방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각자의 삶에 녹아든 요소들은 천차만별로 다르고 범주를 나누기엔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소통을 하면서 얻게 되는 상대방의 인사이트와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떠한 사람인지 어느정도 알 수 있고, 여기서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사람의 가치가 보일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들을 그 사람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면서 인정이라는 의식에 도달하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전반적인 진심 어린 인정은 나와 다름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임과 동시에,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가치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툭 터놓고 말하면 우리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든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이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이란 걸 인정한다는 생각을 은근하게 내비치는 것이다.

위 말을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겸손한 사람보다 자기가 어느 부분에서 우위에 서있다고 생각하거나 전반적으로 자기가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당신 주위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겸손이 단순히 상대방보다 단순히 낮추어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과 잘난 부분을 확실하게 인지하여, 부족한 부분은 배움의 마음가짐으로 절대 자만하지 않고 임하고 타인보다 뛰어난 부분은 잘났다는 기색을 굳이 겉으로 내비치지 않으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쪽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에 능숙한 타인에게 배움과 존중의 태도로 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사답고 멋진 인품을 보여주게 되어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원활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타인보다 뛰어난 영역에서 우월함을 굳이 내비치지 않고 오로지 당신이라는 사람 그 자체로써 능력을 발휘하여 좋은 영향력을 선사할 때, 상대방은 고마움과 존경을 표할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대해선 이루고 싶고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잘못했거나 못난 부분은 숨기고 싶어하며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무엇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의 못난 점을 굳이 드러내어 비굴함과 민망함을 선사하기보다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부분을 밖으로 꺼내어 진심으로 대하면 된다.
 
 

하지만 애처로울 때도 있다. 근거 없는 성취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종종 정말 헛구역질나게 불쾌한 자만심으로 소동을 피우며 자존심을 세운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서 말을 이어왔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예외는 존재한다. 위 문구같이 자만심에 빠져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 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본 것들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게 절대적으로 맞다는 판단을 해버린다. 곧 맹신으로 이어지게 되고 잘못된 신념으로 바뀌어 타인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틀린 것이라고 치부하며 자존심을 치켜세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는 솔직히 살다보면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면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해결할 의지가 없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 바뀌거나 그대로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이런 사람이 아닌지, 자기만의 신념이 있다고 해도 혹여나 저런 식으로 행동하진 않았는지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 자체가 저러한 사람들을 보면 화내거나 훈계하지 말자. 그저 애처롭고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자신이 서있는 분야에서 월등히 뛰어나고 통찰력 있는, 그런 인품의 사람한테 크게 꺾여야 정신을 차릴 수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감정소모를 하면서 힘을 뺄 필요가 없다.
 
 

밴민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 그러면 몇 시간이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타인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 하고 있으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연스래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험담하는 이야기라면 아마 그자리 분위기의 화기애애함은 물건너 가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당신의 인품과 인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견해를 품고 있을 것이다.
 
위 인용구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상대방에 대한 칭찬과 진심어린 관심을 담은 견해 혹은 느낌을 뜻한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과 인정을 보일 때, 상대방은 충분히 그걸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보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와 견해에 더 집중하고 관심을 보인다. 좋은 이야기라면 더더욱 말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러면 그들의 신경은 온통 그리로 기울 것이고 화두의 중심은 당신 차지가 되어 대화를 이끌어 나갈 명분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추가로 이야기가 어떠하냐에 따라 당신의 인품과 인성을 증명하여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지에 대한 결정도 자연스럽게 내려진다.
 
 
⇒ 진심으로 상대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하고 인정하라.